추천여행

관광의 중심지! 군산에서 관광명소를 둘러보세요!

구불 2길 햇빛길

Gubul-gil Course 2 Sun Shine Course

총거리 15.6Km 총소요시간295

부처가 있는 절이라는 뜻의 불주사를 지나 망해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금강은 햇빛이 반사되어 비단처럼 반짝이고 그 위를 노니는 철새들로 장관을 연출한다. 그 앞으로 보여지는 너른 십자들에서 풍요를 선물받고 임피향교와 채만식생가터 등을 거쳐 인문학의 정취에 빠져 드는 길이다

  • 불주사
    불주사는 군산지역의 사찰 중 유일하게 일주문이 있었던 사찰이다. 가운데 대웅전이 자리하고 동북쪽에 벽안당(혹은 관음전)이 있고, 대웅전의 동남쪽에는 나한전이 있는 구조이다. 1986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117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는 대웅전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주심포계팔작지붕 건물로서 최근에 단청을 새로 하였는데, 조선시대 양식의 건물이다. 블주사라는 명칭은 무엇일까? 불주사라는 명칭은 이 사찰의 뒷산 모습이 석가모니불이 설법하신 인도의 마갈타국 왕사성의 영축산과 흡사하다 하여 축성산이라 부르고 절의 이름도 깨달음을 얻으라는 뜻에서 불지사라 한 것이지만 본래 명칭은 불주사 즉 부처가 있는 절이라는 뜻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 노성당
    노성당은 읍내리 임피초등학교 입구에 위치하고 있는데 주변은 구 읍성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 건물은 원래 이방청이었는데 임피 장날을 정하고 물가를 정하는 사람을 지정하였으며 신창진(새챙이 나루터)의 입출항 선박을 통제하는 기능도 있었다고 한다. 1905년 이후에는 일본 경찰의 주재소로 사용되었고 그 후 임피의 유지 이동석이 매입하여 양로당으로 쓰도록 노인회에 기증하였다고 한다.
  • 연지 및 선정비
    조그마한 연못을 배경으로 옛 비석들이 줄지어 서있는 모습을 볼 수 가 있다. 어느 고을이나 현청의앞에는 그곳 관아에서 근무한 수령들중 공이 많은 사람들의 공덕을 기리는 비석이 서있기 마련인데 이곳에도 총17개의 비석들이 선정비 및 영세불망비라는 명찰을 달고 서있다. 비석들 뒤쪽으로는 오리가 놀고있는 연못이 있다. 연못의 가운데에 인공섬을 만들고 버드나무를 심어놓았는데 버드나무가 묘한 모습으로 누워 자라는 바람에 연못 전체의 운치가 더하는 듯하다. 인공으로 조성한 이곳 연못은 언제 누가 만들었으며 연못의 이름이무엇인지도 전해지고 있지 않다.
  • 옥란교
    옥란교는 논 경지정리로 지금은 사라졌지만 읍내리 서남쪽 800m 지점의 논 한가운데 있던 돌다리였다. 유래를 보면 조선중기 광해군때 임피현으로 귀양을 온 선비가 있었는데 임피현령에게 그를 외딴섬으로 유배시키라 하였다. 그러나 당시 임피현령은 귀양 온 선비와 절친한 친구라 섬으로 보내야 하는 상황에 가슴 아팠다고 한다. 그렇다고 조정의 명령을 거역할 수도 없어 사또는 밤마다 고민하였다고 한다. 그때 사또의 딸인 옥란낭자가 기발한 묘안을 제안했다. 읍내에서 멀지 않은 성 밖에 연못을 파고 그 연못 가운데 섬을 만든 후 아버지의 친구를 그 섬에 유배시키자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아침저녁으로 식사를 날라주기 위해 연못의 섬에 돌다리를 만들었으니 사람들은 이 다리를 뛰어난 발상으로 아버지의 고민을 해결한 옥란낭자의 이름을 따사 옥란교라 불렀다는 것이다. 지금은 연못도 옥란교도 모두 사라지고 우정의 소중함을 전하는 전설만 남아 있는데 선정비 뒤에 있는 연못의 모습이 온란교의 전설과 유사하여 다시금 살펴보게 된다.
  • 임피향교
    임피향교는 1403년(태종 3) 현 경산리 교동인 대정동에 창건되었는데 1630년(인조 8)에는 현 미원리인 서미곡으로 이건되었으며 1710년(숙종 36)에는 현재의위치인 장유동으로 옮겨 다시 세워졌다. 1974년에는 대성전이 중수되었고 1975년에 명륜당이 보수되었다. 임피향교는 조선 후기의 소규모 향교형식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대성전은 공포의 양식이나 초석 등에서 특이한 점을 가지고 있어 건축사적으로 연구할 부분이 많은 건물이다.
  • 백릉 채만식
    채만식선생은 자신의 고향인 군산을 배경으로 1930년대 암울한 삶을 그려낸 장편소설 탁류를 만날 수 있다. 백릉 채만식선생은 임피면 읍내리 274번지에서 출생하였으며 중앙고보를 거쳐 일본 와세다대학 영문과를 중퇴하였다. 귀국 후 동아일보, 조선일보 기자를 역임하였고 1925년 단편 "세 길로"가 "조선문단"에 추천되면서 문단에 데뷔하였고, 1943년에 "레디 메이드 인생" "인테리와 빈대떡" 등 풍자적인 작품을 발표하여 작가 기반을 굳혔다. 그 뒤 단편 "차숙" "소망" "예수나 믿었더면" "지배자의 무덤"등 풍자성이 짙은 작품을 계속 발표했다. 대표적인 장편 "탁류"는 한 여인의 비극적인 사건을 놓고 사회의 비리를 풍자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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