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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비/소설비/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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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릉 채만식 선생문학비

백릉채만식 선생 문학비
백릉 채만식 선생의 문학비는 군산시 월명공원 안에 세워져 있다. 소설 ‘탁류’의 배경이 되었던 군산시가와 금강을 바라보고 있는 곳으로 수시탑 뒤 순환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100m 가량 내려간 언덕 위에 자리했다. 그의 문학적인 공적을 기리기 위해 1984년에 세운 문학비에는 “탁류는 한 시대의 역사적 현장으로서 세태의 혼탁한 흐름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인간의 탐구에 크게 기여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이제 유서깊은 이 고장 도도히 흐르는 바다를 굽어보는 자리에 정성을 모아 여기 영구불망의 한 돌을 세워 그 업적을 길이 추모하게 되었으니 기쁜 마음 그지없다”라고 새겨져 있다.

백릉 채만식 소설비

백릉 채만식 소설비
  • 소설 [탁류]의 주요배경인 미두(米豆)의 거리에 있다. 미두장은 일종의 도박장으로 소설의 주요인물 정주사도 여기에서 빈털털이가 되었다.
  • 위치 : 장미동 구조선은행 건물옆 (1996. 7. 30. 군산문화원에서 세움)
  • 미두장 (米豆場)
    • 미두장은 속칭이며 실제명칭을 군산미곡취인소(群山米穀取引所)이다.(현재 백년광장 앞좌측모퉁이)
    • 소설비 내용 소설 탁류의 중심 무대인 미두장이다 본래 명칭은 군산미곡취인소이다. 따로는 시장이라도 부르는 목제 이층건물이다. 이곳은 군산의 상징이며 治外 법권의 공인된 도박장이다. 곱추 장형보의 꾐에 빠져 미두에 손을 댄 정주사는 “미두”에서 하바꾼으로 전락해 빈손으로 하다가 돈을 갚지 못하면 봉변을 당하기 일쑤고 그러자면 끼니를 거를 때가 많다. “미두”는 일본 대판의 미곡시세를 놓고 사고파는 증권 시장과 같은 도박장이다. 하바꾼은 “미두”에서 전락한 사람들이 하는 일종의 갓사리 같은 것이다. 군산미두는 일제가 호남 농촌 자본을 노리는 식민지 정책의 표본 이었던 것이다. 탁류의 소설무대는 바로 이곳 미두장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 째보선창
    • 지리적으로 살펴 볼때 금강하구로 흐르던 강줄기가 동부 어판으로 살짝 한쪽으로 째지면서 선창을 이루고 있다. 마치 째보처럼 째졌다하여 붙여진 별명 또는 째보라는 텃새부리던 실존 인물 이름이 거론된다.(현재 동부어판장 옆 매립터)
    • 소설비 내용 소설중 여기는 J주사가 서천에서 군산으로 건너온 착지이다. 정주사는 강건너 서천땅에서 그의 선대유산인 선산 한필지에 논 사천평과 집한채를 모조리 팔아 빚을 뚜두려 갚고 그의 처 “ 유씨”, 딸 “초봉, 계봉” 그리고 아들 형주를 거느리고 용댕이에서 똑딱선을 타고 이곳 째보선창으로 건너와 처음 발을 내디딘곳이다. 그 후 정주사는 미두 중매점에서 일을 보다가 아예 미두에 손을 대 남은 가산을 탕진하고 미두꾼으로 전락하여 자식 같은 젊은 미두리꾼에 멱살이라도 잡힐라치면 이곳 째보선창으로 나와 “나 혼자 죽으면 그만이지 두루마기 둘러쓰고 풍덩 물로 들어 자살이라도 해볼까” 하고 곰곰이 생각도 해보던 곳이다.
  • 조선은행
    • 이 조선은행은 주로 조선인들만이 거래하던 은행이다.(현재 빈해원옆 좌측 길건너편)
    • 소설비 내용 여기는 조선은행 군산지점이다. 소설 탁류에서 고태수가 근무하던 은행이 조선은행으로 추정된다. xxx 은행 군산지점 당좌계좌에 근무하던 고태수는 서울에서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xxx 은행 사환으로 취직 일하면서 야간중학교를 졸업 성실하게 근무하는 것을 인정받아 이 은행으로 승진 군산지점으로 전보되어왔다. “고태수” 는 마루의 바다지로 있는 곱추 장형보의 꾀임에 빠져 미두에 손을 대고 많이 손해를 본다. 미두에서 손해를 보자 은행거래하는 “백석” 이라는 사랑의 도장을 위조 가짜 수표를 만들어 장형보를 시켜 남의 돈을 은행으로부터 빼기 시작하여 그 액수가 근 만원에 이른다. 이 돈으로 미두 뿐 아니라 술집 기생으로 드나들며 흥청망청 놀아난다. 돈으로 사다시피 초봉과 결혼을 한다. 결혼 우에도 싸전집 한참봉처 윤씨와 정을 통한다 머리를 맞고 죽는다. 조선은행은 일제 식민정책의 본산이기도 했다
  • 꽁나물고개
    • 정주사 집으로 가려고 하면 이 콩나물고개를 지나야 한다. 콩나물 고개는 조선인 거류지역으로 초가집 지붕이 마치 콩나물시루 같이 다닥 붙은데서 비롯된 말이며, 소설 속 주사집도 둔뱀이 산꼭대기에 있었으며 한참봉 쌀가게도 이 콩나물 고개 바로 아래에 있었다. 지금도 창성동에서 선양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다.(현재 선양동사무소 앞)

채만식 선생묘소

채만식 선생묘소
  • 어려운 시기에 세상을 뜨시며, 상여는 쓰지말고, 리어카에다 관은 산국화, 들국화로 덮어 달라는 유언을 남기셨다. 묘비명은 작가 이무영님이 쓰셨다.
  • 위치 : 임피면 축산리 계남마을
담당부서
문화예술과 채만식문학관팀
담당자
문필환(☎063-454-7887)
최근수정일
2014-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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